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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国実顕地づくり研鑚会[学育編]


今回の実顕地づくり研で韓国楽園村について話してきてほしいとの提案を受けて、9月10日久しぶりに日本に来ました。この間受け入れてくれる春日山実顕地は7年ぶりだったので、とても懐かしかったです。

豊里実顕地で11日から行われた実顕地づくり研では、会場に入ると既に70~80人位の人がいて、こんなに多くの人たちと、しかも二重の円になって研鑽会をするのは初めてだったし、20代は自分一人だったので緊張してしまいました。

今回のテーマは「学育」についてでした。先ず、この夏小4~中2の全国の村の子たちが北海道に旅合宿を行ってみての話で盛り上がりました。「子どもたちが自由を感じた」とか「誰々と本当に親しくなった」「同志が出来た」とか「7000円を自由に使ってみた子どもたちの反応」についての話が一杯出ました。僕はまだ「学育」についてあまり考えたことがなかったので、よく聞いてみました。(たまに難しい言葉は理解できませんでしたが・・・)

そんな調子だったけど、途中せっかくこの研鑽会のためにわざわざ韓国から来たのに、一言ぐらいは発言しないといけないかなと思いました。まだ子どもを育てたことはないけれど、養鶏で育成をやる中でヒヨコを世話する時の最も基本である「ヒヨコによく聴いてやってみる」という話と、実顕地で育った子どもたちが、ヤマギシを嫌いになった理由の大半を占める「物(お金)」についての話を出しました。「金の要らない仲良い楽しい村」で暮らすために集まった私たちですが、その村の中で暮らす子どもたちは「金が中心で回っている世の中」と「実顕地」を行き来しながらどんなことを考えているのか?何か正解を出して、子どもたちをその正解に合わせようとしているのではないか?村でこんなに良い大人たちと仲間、お兄さん・お姉さんと共に暮らしていたのに、村で育った全ての子どもたちに嫌な思いは残さないで、良い思い出をたくさん与えたいというところから話しました。

僕は村(実顕地)を愛しています。僕がこのように思えるのは、これまでみてきてくれた人たちがいてこそのことだなと思いました。一人一人みんなが村の子どもたちを大事に思っている心が伝わってきました。「こういうところで子どもたちを育てたら・・・」と想うと、すごく幸せな気分になりました。

今回の研鑽会には平本美穂さんも参加していましたが、美穂さんがいてくれて自分がこの場に居られるんだなと思いました。(美穂さんは僕が5歳で豊里の幼年部にいた時、韓国の親代わりに一年間日本でのお母さんになってくれた方です。)

今回はいろんな人たちが実顕地で子どもを育ててくる中で思うことや方向性について話してくれました。とても良い時間でした。最後に一つ思うことは、次回の研鑽会は村全体の子として(自分の子としてでなく)の学育についての話をもっと聞きたいです。

【韓国実顕地 金ハンギョル】
金ハンギョル君(わくわく合宿で春日山の学育の子たちと稲刈りを楽しみました)

金ハンギョル君(わくわく合宿で春日山の学育の子たちと稲刈りを楽しみました)

마을만들기 학육연찬회를 다녀와서

요번 마을만들기 연찬회에서 한국 낙원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달라는 제안을 받아서 그저께 오랜만에 일본에 왔습니다. 가스가야마 분들은 7년만에 뵙는 거라서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어제 도요사토 실현지로 가서 연찬을 하였습니다. 연찬시작 바로 전에 들어가서인지 이미 70-80명의 분들이 앉아계셨습니다. 이렇게 많은분들과 그것도 2중원으로 연찬하는 것은 처음이기도 하고, 20대는 저 혼자인것 같아서 긴장을 하고 시작하였습니다.

요번테마는 학육에 대해서 였습니다. 먼저 최근에 초4부터 중2까지의 전국의 마을 어린이들이 홋가이도로 여행합숙을 다녀오고 나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자유감을 느꼈다던지 누구와 정말 친해졌다던지, 동지가 생겼다던지 7000엔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받은 아이들의 반응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학육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들어보았습니다.(가끔 어려운말은 이해를 못한것도 있지만) 그러다가 그래도 이 연찬회를 위해서 일부러 한국에서 왔는데, 한마디는 해야 할 것같아서 아이를 키운적은 없지만 지금 나로서 드는 생각을 내 놓았습니다. 양계부에서 육성을 하면서 병아리를 돌보는데 가장 기본중 하나인 병아리에게 잘 물어보고 한다는 이야기와 실현지에서 자란 출신 중 야마기시즘을 싫어하게 된 사람들이 있는데 그 이유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물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돈이 필요없는 사이좋은 즐거운 마을에 살려고 모인 우리들 이지만 그 마을 안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돈으로 돌아가는 세상과 마을을 오가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언가 정답을 내리고 아이들을 정답에 맞추는 것은 아닐까? 마을에서 이렇게 좋은 어른들과 친구 형 누나와 함께 지냈는데, 마을에서 자란 모든 아이들이 싫어하는 추억은 만들어주지 않고 좋은 기억을 많이 주고싶다는 데에서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마을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제가 생각이 들도록 지금까지 돌봐주신 분들이 계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 모두가 마을의 아이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함께 보아가려고 하는 마음들이 이야기를 들으며 전해져왔습니다. 이런 곳에서 아이들을 기른다면 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행복해졌습니다. 저 쪽에 히라모토 미호상도 계셨습니다. 이분이 계셔서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미호상은 제가 5살 때 도요사토 유년부에 다녔는데 그 때 저를 한국의 친 부모님을 대신해서 1년가 일본에서의 엄마로 돌봐주신 분입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를 학육하면서 그리고 학육부에 보냄으로서 드는 생각이나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아주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드는 생각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마을전체의 아이로서 학육에 대해서 더 이야기를 듣고싶다는 것이 있습니다.